사진/사진자료

왜 사진을 찍고 싶은가

大空 2009. 1. 2. 14:07

왜 사진을 찍고 싶은가  ─ 파이닝어(Andreas Feininger)

 

 

자기 일의 기록으로서 찍을 필요가 있기 때문인가, 타인에게 보여 줌으로써 교육하기 위해서인가, 자기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찍고자  하는 것인가, 감정이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기 때문인가, 사진을 취미로서 하기 위해서인가, 직업으로서 해 나가기 위해서인가, 다른 직업의 보조수단으로 삼기 위하여인가,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하기 위해서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올바르게 대답하는 것은 사진가로서의 장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취미로서의 사진

 

만약에 사진이 취미라면 당신은 아마추어이다. 그것이 좋기 때문에 무엇을 한다는 사람, 다시 말하면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사람. 이것이 아마추어의 정의이다.

 

만약에 아마추어로서 성공하고자 생각한다면, 자기의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 것에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이러한 바람직한 상태에까지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독창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인 당신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사진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억압하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끄럽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사진가로서는 이같은 행복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것과는 좀 부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이러한 특유(特有)한 처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잘 이용하려 하는 아마추어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대개의 아마추어는 목적도 목표도 갖지 않고 그저 우유부단(優柔不斷)해서, 무엇인가 좋은 지침이 될 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찾게 된다. 그래서 결국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남의 작품을 칭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사진을 하고 작품을 경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버리면, 결국은 서로 상대를 좋게 평하는(칭찬) 군소사진 그룹의 일원이 되는 정도로 만족하여, 상당한 가치 있는 사진가가 되는 기회를 잃고 단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익한 모방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록 친우이건 평상시 존경하는 사람이건 간에 자기 이외의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너무 필요 이상으로 깊이 파고들어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다 각기 다른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남이 쉽게 접근하여 처리하는 문제나 대상이라도, 나 자신에 있어서는 전혀 맞지 않는 부적한 것일 수도 있다. 남과 나를 혼돈하지 말고, 나 자신만의 능력에 자신을 갖고 일에 임해야 한다.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비판을 잘 분석하여 자기에게 알맞은 비판이라고 믿어졌을 때에만 충고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사진

 

사진을 직업으로 하여 성공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취미에 잘 맞는 분야를 택하는 것이 현책(賢策)이다. 만약에 여행을 좋아하여 새로운 사람들이나 사물을 보는 것에 취미가 있으면, 사진잡지를 활약의 무대로 하는 보도사진기자가 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기술적인 면에 흥미가 있으면 산업사진가나 공업사진가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보거나, 인간에 흥미가 있으면 뉴스 카메라맨이나, 초상사진가를 지망하는 등 여러 가지 분야를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자기가 정말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으며 그것에 커다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사진으로써 얻는 금전적인 수입보다도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프로 사진가는 사진이 생활 그 자체요, 어쨌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에 대하여 보수(報酬)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최고의 사진가로서 알고 있는 사람등은 예외 없이 모두가 이러한 타입의 사진가이다. 피사체에 대한 흥미를 떠나서 사진가로서의 일에 완전히 몰두(沒頭)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성공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일의 보조수단으로서의 사진

 

오늘날의 사진은 활용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고 하여도 좋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사진 이외의 일과 관련하여 사진을 활용하고 있는 예로선 수표, 서류, 각종 인쇄물의 마이크로필름 복사, 출판물에 있어서의 사진복제, 신분증명이나 법률시행(法律施行)상의 기록, 증거사진, 의료상의 X선 사진 등, 그 가지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사진활용의 목적은 모두  인증가치를 갖는 기록의 작성에 있다. 이러한 기록을 작성하가 위하여서는 객관적인 촬영, 사진기술상의 지식, 경험과, 그에 따른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기록의 작성에 사진을 활용할 때는 사진가로서의 자격은 그것만으로써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예컨데, 어떤 책속에 조각의 사진을 삽화(揷畵)로서 넣고자 했을 때, 그 조작의 기록성이 충분하면 사진의 목적은 일단은 달성된 것이 되지만, '기술적으로 완전'한 사진이라는 것만으로서는 불충분한 것이다.

 

예술서적 속의 촬영사진을 보면 이런 점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어느 정도 기록적으로 완전한 사진이라 하여도 미술서의 완전한 사진이라고 하여도 미술가의 삽화로서는 부적당하다고 하는 것은, 조각의 모습 또는 형태는 잘 기억되었다 해도 작품 자체의 느낌이 표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삽화)의 sharp함이라든지 극명함은 손색이 없다치더라도 보기에 좋지 않다.

 

예컨대, 촬영각도가 나쁘다든지, 각 부분의 form이 overlap하여 보기에 어색한 인상을 준다든지, 원근감의 distortion으로 조각 전체의 균형이 허물어진 것이 원인일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lighting도 서투르고 광휘부와 암부(어두운 부분)의 배열이 나쁘기 때문에 모처럼 입체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흩어지고 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조각의 예의 경우와 같이, 피사체의 image를 충분히 살리면서 그 위에 또 기록 목적에 따른 사진을 만들 경우에는 고도의 사진 기술만으로서는 불충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과 유사한 생각은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 나는 지금까지 과학기술잡지, 각종 도서, 참고서, 건축, 그 밖에 나의 관심이 깊은 테마의 각종 기사에 부수되는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실망하여 왔다. 사진 그 자체는 기술적으로 부적한 점이 없지만, 단조롭고 볼품도 없으며, 문장의 보조적 구경거리로서 아무런 흥미도 일지 않는다. 이러한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매우 진귀하고도 매혹적인 것을 촬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놓여 있으면서도, 촬영한 당사자의 본래의 느낌을 조금도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기록한 데 그친 사진가가 너무도 많음을 아쉬워한다. 이러한 사진은 완전히 실패인 것이다. "사진으로서 보인다"는 능력이 촬영자에게 없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모처럼의 기회가 이렇게 됨으로써 엉망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섭섭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섭섭한 생각은 전혀 일지 않을 만큼 잘 찍혀진 좋은 것도 있다. 같은 피사체를 찍은것이라 해도 'life'나 몇몇 유명한 잡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부러우리만큼 훌륭한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찰영자 자신이 감식안(鑑識眼)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독자의 마음이나 상상을 북돋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기표현수단 으로서의 사진

창조적인 사진은 프로 작가는 물론, 아마추어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재능을 떨치는 프로 사진가라 하여도, 대개는 아마추어에서 출발하여, 작품을 매입하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을 직업으로 하는 편이 실행성이 높다고 여겨서 전향한 사람이 많다. 또 프로 사진가이기 때문에, 사업을 번창하게 하여 주는 여러 가지 조건이나 기회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진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인 것이다. 창조적 사진가의 창작능력은 일반 사진가 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서, 사진의 전위(前衛)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진가는 완고하고 고집불통이며 자부심이 강한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그들의 작품은 항상 자극적이어서 논의 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때로는 보수적인 어프로우치 밖에 취할 수 없는 사진가에 있어서는 경이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들은 규칙(rule) 따위에는 따르지 않고 금기조건 마저도 구애치 않는다. 창조적인 인간에게는 대부분 공통된 것이지만, 잠자코 있을 수 없는 기분의 움직임으로 자기의 감정이라든지 생각한 바의 표현방법을 찾지 않고서는 그냥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감사진(로우앵글)이나 앙감사진(하이앵글), 자연광에 의한 켄디드 사진, 동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위하여 일부러 화상을 흐리게 한 사진, 다중노광 이나 포토그램, 그 밖에 솔러리제이션, 레티큘레이션, 배스릴리프 등의 혁명적인 표현법이라든지 기술의 가능성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이와같은 기술도 예전 한때는 '잘못된 헛짓' 이라든지 '일시적인 호기심' 이라든지 하여 비웃음을 산 적도 있었지만, 오늘날엔 창조적 사진가의 일상어의 일부로 되어 있다.

※솔러리제이션:필름이 매우 심한 노출과다로 인하여 나타나는 부분적인 톤의 반전효과.
※레티큘레이션:(감광유제의) 그물 모양의 주름.

 

 

무엇을 촬영할 것인가

무엇인가 근거가 확실한 것,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남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흥미가 있는 것을 말하고자 하면, 무엇에 대하여 말할  것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촬영자(撮影者)는 다음과 같은 점을 자신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주제가 자기에게 제일 흥미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해답이 나오면 어떠한 주제를 촬영할 것인가 하는 제2의 문제에 대한 답도 스스로 나올 것이다. 이 점에서 아마추어는 취미와 흥미를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킹 또는 등산을 한다든지 스키장에 간다든지 하는 경우 카메라를 휴대(携帶)하고 마음에 드는 산을 만나면 이것을 촬영하거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또 다른 피사체들, 즉 수목,화초,암석의 풍정(風情), 바람의 무늬를 그린 모래언덕, 수정(水晶)이나 조개껍데기,흰구름이 떠도는 창공 등 마음 내키는 대로 촬영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물, 낚시질, 어선(漁船), 해변(海邊), 총구(銃砲), 자동차, 곤충(昆蟲), 회화(繪畵), 조각(彫刻), 연극, 어린아이들, 사회활동, 민예(民藝), 재즈 음악 등 취미에 맞는 피사체의 선택은 한없이 많은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남과 작품을 경쟁한다든지, 존경하는 나머지 무조건 그 사람의 모방(模倣)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아마추어든 프로든 간에, 사진가로서 피사체를 대하는 것은 어푸로치에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객관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주관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① 객관적인 방법 : 이것은 사진가가 편견(偏見), 또는  주관에 치우치지 않고 다만 사실에만 충실하게 보도하는 것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표현의 형태보다는 피사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묘사(描寫)의 명쾌함이다. 상상성(想像性)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객관이라 함은 여기에서 단조(單調)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방법은 사실은 될 수 있는 대로 정밀하게 표현하여, 사진에 재현된 사실에 대한 결론이라든지 견해는 이것을 보는 사람들의 목적에 맡기고자 하는 과학자 또는 기록주의자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姿勢)인 것이다.

② 주관적인 방법 : 이것은 사진가가 그의 눈에 비친 것을 자신이 느낀대로 표현하고자 신중(愼重)한 노력을 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감응을 사진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메지네이션이나 피사체에 관계(關係)되는 순결(純潔)한 감정과 지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