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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八正道)의 원어는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tthangiko magga)'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여덟 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팔정도와 함께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역되었다. 팔정도에 대해 독립적으로 설해진 경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성제의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苦)의 원인(集)을 멸(滅)하는 방법(道)'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를 멸하는 것으로 그것이 성취된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사성제에 포섭된다. 고라는 인간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수행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론적인 가르침으로서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 수행 속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팔정도는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1. Ariyo atthangiko magga 이른 시기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빠알리어로 전해져 온다. 빠알리는 우리말과 달리 영어와 같이 복수를 분명히 표시한다. 여덟 가지의 팔정도를 단수로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팔정도는 그 자체로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실천법이라는 뜻의 일승도(一乘道: ekayana-magga)로 표현되기도 한다. 단수로 쓰인 중요한 이유는 뒤의 '팔정도의 수행순서'에서 더 설명된다. 2. Ariyo Ariyo는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인데, 사성제와 함께 왜 성스러운 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팔정도가 '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귀한 수행법'이라는 뜻과 함께 '성스러운 사람들이 가진 실천법'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 발심(發心)을 낸 모든 사람들은 성스러운 삶을, 고귀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임을 나타내준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향사과(四向四果)에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3. Magga 사성제에서 제(諦)로 번역되어 '진리'라고 알려져 있으며, 또한 다른 곳에서는 도(道)라고 번역되어 '궁극적인 경지를 성취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성제를 이루기 위한 실천 수행법인 도성제의 팔정도를 의미한다. 4. Samma 정견(正見)으로부터 정정(正定)까지 모두 정(正)을 의미하는 Samma는 '(올)바른'의 뜻과 함께 '완전한', '완성된' 또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과 같은 뜻이 있다. 부처님을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라고 할 때 '등'자와 같다. 따라서 보통 정견은 '바른 견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완전한 견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바른 것은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고, 일체에 이른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머지 팔정도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완전한 인격을 위한 실천법임과 동시에 열반을 성취한 완전한 인격자들의 삶의 방식이며 자세하고도 할 수 있다. 5. 팔정도의 내용 팔정도의 여덟 가지는 다음과 같다. 정견(正見: Samma-ditthi), 정사유(正思惟: Samma-sankappa), 정어(正語: Samma-vaca), 정업(正業: Samma-kammanta), 정명(正命: Samma-ajiva), 정정진(正精進: Samma-vayama), 정념(正念: Samma-sati), 그리고 정정(正定: Samma-amadhi)이다. 경전에 많은 내용들이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하고 설명할 수는 없고, 다만 종래에 잘못 이해되고 있는 몇 가지를 점검해 보면, 두 번째의 정사유에 있어 흔히 '바른 생각'이나 아니면 그대로 '바른 사유'로 번역되지만, 원어에 따라 더 정확하게 현대적인 번역을 한다면 '바른 의도'로서, 적극적인 목적이나 계획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올바른 마음가짐 또는 마음 챙기는 것이나 '완전한 의도'를 뜻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일곱 번째의 정념은 정사유의 뜻과 혼돈스럽게 '바른 생각'으로, 또는 '바른 기억'으로 잘못 번역되어 이해되고 있다. 념(念)의 원어는 기억이라는 뜻 이외에도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리 쓰인다. 최근의 우리말 번역에 있어 '알아차림', '주시', '마음 챙김', '각성'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지만, '수동적 주의집중의 상태'가 더 정확한 의미이다. 이는 뒤의 정정의 내용인 사선(四禪)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서 선정을 통해 지극히 마음이 가라앉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가 계속되면, 언제부터인가 일상적인 사유 작용과 감정이 쉬면서 마음은 분명히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제까지 스스로의 사유와 감정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능동적인 활동'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화시켜 볼 수 있는 '수동적인 주의집중이 이루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염의 작용적인 측면이 바로 세계와 인간 존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如實知見] 바탕이 된다. 그렇게 완성된 념(念)에 의해 대상화 된 몸과 느낌, 마음, 그리고 법을 관찰하는 사념처(四念處)가 긍극적으로 완성된 념으로서 정념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름 아닌 여실지견을 통해 열반을 성취하는 것 이외에는 아니다. 6. 팔정도의 수행 순서 팔정도의 수행 순서에 있어 몇몇 경전에서는 정견부터 순서대로 이루어져 정정에 이르는 것처럼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편의상의 설명방법이고 실제로는 동시에 팔정도를 모두 병행하며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흔히 차제(次第) 수행법은 제일, 제이 등과 같이 표현되고 있는 데 반해, 팔정도의 원어는 여덟 가지 수행 덕목의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단수로 쓰인 것을 통해서도 그러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즉 각각의 팔정도가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할 법이라기보다는 동시에 병행해서 닦는 것이다.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이 팔정도 가운데 하나를 중점적으로 닦더라도 각각이 다른 7개와의 관련 속에서, 또는 포섭시키면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7. 팔정도 수행의 결과 따라서 팔정도 수행에 따라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과 일체의 고를 여의고, 열반을 성취하고, 해탈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는 법이라 하였다.▣ 조준호 지음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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