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관심론(觀心論) 8 |
몸 가운데 진여불성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으면 ‘眞容의 모습’ 以大慈悲憐憫一切故 於淸淨法體中 대자비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청정한 법체에서 이러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법유(法乳)를 흘려내리게 해서 해탈을 구하는 이들을 법유로 기르시니, 이와 같은 청정한 소의 청정한 우유를 마시면 비단 부처님만 그걸 드시고 성도(成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도 마시기만 하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게 된다.” 다시 물었다. “경전에는 ‘중생이 절을 짓고 성상(聖像)을 세우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장명등을 켜고, 밤낮으로 여섯 차례나 행도(行道)하고, 재계(齋戒)를 지키며, 예배를 올리는 등 여러 가지의 공덕을 닦으면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오직 관심법(觀心法)에 모든 수행이 포함된다 하시니 이건 전혀 허망한 말 같습니다.” 答曰 佛所說經 有無量方便 대답했다. “경전은 무수한 방편으로 되어 있다. 중생들은 근기가 둔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깊은 뜻을 알지 못하므로 유위(有爲)의 일로 무위(無爲)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만약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밖에서 복을 얻으려 한다면 옳은 처사가 아니다. 가람이란 범어의 음략(音略)인데 청정처란 뜻이다. 만약 삼독을 영원히 없애고 항상 육근이 깨끗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안팎이 청정하다면 이것이 가람을 짓는 것이다. 또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중생들이 불도를 구할 때, 말하자면 각행(覺行 : 自覺·覺他하는 행법)을 닦을 때에 여래의 참되고 묘한 모습을 허상으로 반영한 것이지 어찌 법을 금동(金銅)으로 주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해탈을 바라는 자는 몸으로 불가마를 삼고, 법으로 불을 삼고, 지혜로 공장(工匠)을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 모양을 삼아 몸 가운데 있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어 하나도 빠뜨림 없이 가르침대로 행하면 절로 진용(眞容)의 모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허물어지는 유위법이 아니라 영원히 상주하는 절대진리의 미묘법신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도 이러한 참된 진용(眞容)을 조성하고 그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공덕을 이룬다 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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