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관심론(觀心論) 10 |
근기 둔한 사람 밖으로 과보 구해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 돈다 又長明燈者 正覺心也 覺知明了 또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친 마음을 뜻한다. 깨달은 지혜의 명료함을 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으면 지혜의 밝기가 마치 등불 같을 것이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밝은 깨달음을 열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愚癡衆生 不會如來方便之說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소유(蘇油)로 등을 켜서 빈 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 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백호광(白毫光)으로도 십만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겠는가.
又六時行道者 所謂六根之中 또 여섯 차례 행도(六時行道)한다는 것은 항상 육근(六根)의 활동이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부처란 깨침이다. 즉시 모든 각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키고 육정(六情)의 청정함을 오랜동안 버리지 않는 것, 이를 육시행도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을 상징한다.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이 돌며 생각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 성현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락을 얻었는데 지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이런 이치를 모르니 어찌 행도한다 하겠는가. 근기가 둔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닦지 않고 밖으로 과보만 구하면서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을 돈다. 이는 피로하기만 하고 진성(眞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은 무리여 참으로 가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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