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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진가탐구]피터 헨리 에머슨 (1856-1936)

大空 2008. 7. 11. 23:04
피터 헨리 에머슨 Peter Henry Emerson, (1856-1936)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린다”라고 쿠르베는 말했다.
하지만 에머슨 이라면 “나는 ‘내 눈이’ 본 것을 사진 찍는다.”라고
맞장구 쳤을지도 모른다.
“나”를 대신해서 “내 눈”을 앞세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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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ddesdon 1888]
피터 헨리 에머슨(Peter Henry Emerson)은 19세기 자연주의 사진이라는 독특한 사진예술세계를 펼친 이론가이자 사진가이다. 그는 사진사 초기에 자신의 글과 사진을 통해서 농촌이라는 주제에 대한 현대적인 다큐멘터리 개념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한때 의사이며, 식물학자요, 탐정소설가이자 사교계의 신사였던 에머슨은 자신의 조류연구에 완벽을 기하고자 1881년부터 사진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1884년에 이스트 잉글리아(Anglia) 지방의 늪지 – “브로즈 Broads”라고 불리는 – 에 정착하면서 그는 이내 그 지방 민속과 의상, 동식물 등에 매료된다.

그러나 그에게 사진 기법은 기록적인 것이기보다는 미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진에 토마스 굿올(T.F.Goodall)과 함께 쓴 글을 덧붙여 펴낸 [노포크 브로즈의 삶과 풍경 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1886)의 서문에서 그는 “ 우리의 목적은 한 권의 예술 도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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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 1886]
이 책의 사진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당시 영국농촌지역의 생활상과 풍경을 담고 있다. 기록과 예술작품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그는 안개 낀 땅, 반사된 호수의 물, 숲 속등은 전원적인 풍광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부들, 소작농들 그리고 사공, 사냥꾼, 낚시꾼, 밀렵꾼, 갈대를 거두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은 주로 클로즈업한 스냅 형식으로 매우 광범위한 생활풍속과 풍경들을 담아 내고 있다. 그의 원판들은 서른 두 점의 사진 요판과 열 다섯 점의 망판으로 구성된 것으로 비록 판각 사들의 손으로 다듬어지기도 해서 어느 정도의 수정은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감광재료는 감색성이 매우 낮아서 세부적인 디테일을 정확히 묘사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로서 손색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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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 1886]
왜냐하면, 사진요판인쇄술로 제작된 이 사진집은 일종의 전통적인 부식판화 형식이지만, 인화된 사진보다도 오히려 세부적인 사실묘사가 더 선명한 것으로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 한 것이다. 에머슨은 이를 직접인화 방식과 전혀 차이를 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1886년 3월 런던 카메라클럽에서 행한 연설에서 “사진의 예술성은 작가의 눈에 들어오는 자연의 효과를 사실적으로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빈곤한 상상력으로 제작되는 아카데미회화양식을 모방하는 예술사진과 인위적인 포즈와 수정 술로 조작된 사진관 사진을 결렬하게 비판 했던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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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 1886]
이 사진집에서 에머슨은 무엇보다도 당시 오스카 G. 레일렌더(Oscar Gustave Rejlander)나 헨리 피치 로빈슨(Henery Peach Robinson)으로 대표되는 합성사진형식의 예술사진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예술사진의 길을 열었다. 각각의 사진들은 현장에서 직접, 때로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제작된 것들로서 하나같이 꾸밈없고 정직했다. 감상성이나, 인위적인 조작에서 벗어난 이 사진들은 즉, 사진 수정작업에 반대하고, 자연주의 사진의 대변자였던 그에게 이 책은 곧 사실주의를 통해서 사진예술성을 입증하려는 목적에서 작품집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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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hering Waterlilies, 1886]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논쟁적이기도 한 그의 글은 “애들 입에 넣어줄 빵 한 조각조차 넉넉치 못한 농부”의 처지에 대하여 “부유한 독자”에게 그 사진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언론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친 이후로, 그의 글들은 부르주아지와 지주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포기하고 휘슬러 식의 시적 풍경에 주력하게 된다. 어쩌든 에머슨은 당시 회화에서 일고 있었던 쿠르베와 바르비종 화파의 리얼리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주의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적 real’으로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는다고 해서 사실주의라고 단정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회화에서 사실적이란 결코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르네상스 초기의 원근법회화의 경우. 화가들의 눈에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릿하고 균형이 무너진 상태로 보이는 이유를 자연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투시도법에 의한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완전하게 보이는 자연과 대상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수정하는 수단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원근법은 ‘사실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상적ideal’. 즉 이상화의 의미를 지녔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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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iff pull, East Anglia ,1880]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쿠르베가 비난을 받았던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쿠르베의 그림에 대한 비판은 주로 “그의 그림은 다게레오타입 daguerreotype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시 예술계에서 그의 그림은 ‘사진적인 외설’이 가득찬 것이었다. 실제로 아론 샤프의 [미술과 사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쿠르베가 작품을 제작할 때 사진을 충실히 참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는 사진의 독특한 색조나 광택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했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러나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쿠르베와 사진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실주의 회화가 사진의 발생과 나란히 성립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은 서구의 근대적인 시각 체계인 투시도법의 연장선상에서 출현 한 것이다. 그러타면, 에머슨은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진예술가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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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1886]
에머슨은 사진이 원근법적 해석의 정확성에 있어 ‘회화’보다 월등히 낫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사진이 회화보다 예술성을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색채의 부재 때문이라고 믿었고, 특히 정확한 색조의 상호관계를 재현시킬 능력의 결핍에 있다고 했다.

사물을 본다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무엇보다도 생리적인 것이다. 인간의 시각에 대한 헤르만 폰 헬름홀즈(Hermann von Helmholz)의 [생물학적 광학 개론 Handbook of Physiological Optics]과학적 연구에 심취했던 에머슨은 예술사진의 미학과 기술적인 접근을 완성한 [예술계 학생을 위한 자연주의 사진술 Naturalistic Photography for the Art 1889]책을 출판 한다. 이 책에서 에머슨은 인간의 눈이 경험 하는 시각의 구조에 주목하면서 사진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에 대해서 중요한 논쟁거리를 제공 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시야는 일정한 범위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데, 즉, 인간의 시야를 고정하면, 주변부와 후면이 흐려지는 현상을 그대로 사진의 렌즈시각에 적용해서 사진을 만들 것을 권하고 있다. 즉, 인간이 선택적으로 보게 되는 대상은 중심부가 뚜렷하게 보이는 반면, 주변부는 다소 흐릿하게 보이도록 렌즈의 초점을 살짝 조정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초점을 흐리게 해서 눈에 거스를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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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Landscape in the Norfolk Broads,1886]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머슨의 추종자들은 초점효과에 대한 왜곡으로 당시 인상주의 회화경향의 흐린 영상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이는 사진적 시각의 물리적 한계, 즉 사진을 찍는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과, 또 하나의 관점만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각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미지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점과 거리 두기는 모든 사진이미지의 근원적 구성을 조성하는 두 요소이다.

20세기의 전반부에 사진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던 그의 이론은 바로 이 “기본 논리”에서 흘러나왔다. 첫째는 시각화 또는 영상화 하는 주체(사진가와 관객)라는 불가분한 존재의 설정이다. 둘째는 첫번째의 당연한 귀결로 “현실 재현의 한계”라는 전제이다. 왜냐하면 화가의 손처럼 사진기 렌즈도 인간의 시각과 그 한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질적으로 최상의 이미지를 내놓는 “값의 단계”에 관한, 다시 말해서 색조와 농담(흑백의)과 광선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그 각각의 값이 어떻건 간에 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대비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상호적인 조화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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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arly Harvest, 1888]
어떤 풍경 앞에서 사진기는 일방적으로 그 풍경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전체를 포착한다. 즉 소재들, 다양한 구도(가깝거나 먼), 광선(강렬하거나 약한) 다양한 톤(흑백)으로 옮겨지는 색조 등이 그것이다. 초점 거리에 따라서, 그리고 감광유제의 감응성과 조리개의 개방(다른 것보다 특히)에 따라서 필름과 사진기는 함께 일체가 되어 주어진 조건들(어두운 부위의 제거, 너무 지나친 움직임 등)을 일차적으로 선별한다. 기계의 구속을 받게 되는 이와 같은 선별은 사진가의 통제가 없다면 우연적이며 임의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반대로 똑 같은 풍경 속에서 사람의 눈은 전체 중의 어떤 요소를 가려낸다. 즉 어떤 인물이나 사물, 어떤 단면, 어떤 광선 등을 가려낸다. 또 사람의 눈은 계속에서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이 면에서 저 면으로 걷잡을 수 없이 연속적으로 옮겨 다닌다. 눈은 한번에 풍경전체를 보지만 여러 대상과 여러 단면을 동시에 포착하지는 못한다. 결국 풍경을 바라보는 어떤 개인은 거기에서 받는 인상과 감정에 따라 대상과 단면과, 광선과 혹은 색조를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개인의 선택은 생리적인 명령에 따른 다기보다는 심리적인 명령에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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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folk Broad, 1890]
사진기에서 인간의 눈으로, 눈에서 바라보는 개인으로, 가차없는 선별과 압축이 이뤄지는 것이다. 마치 불필요한 여분을 점차 거두어내듯이 현실 가운데 지나치다 싶은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확인 절차를 거쳐서 에머슨은 사진 이미지와 인간의 시각을 가능한 한 일치시켜보고자 했다. 그래서 극단적인 명암대비를 피하고 심도를 활용하면서, 후경과 육안에는 간접적으로 잡히는 피사체의 주변부들을 교묘하게 흐릿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직선적인 구성과 초점을 이용하여 이미지 속에 하나의 시각적인 중심부를 설정해 놓고, 시선의 진행 방향에 화면의 각도를 맞추고자 했다.
그러나 에머슨은 1891년 발표된 소책자 <자연주의 사진의 죽음 The Death of Naturalistic Photography>에서 팜플렛에 검은 테를 두르고,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철회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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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허터와 드리필드가 가르쳐 준 바와 다르게, 진정한 명암 효과는 현상 인화 과정에서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진술의 한계는 실로 엄청나다. 그러므로 자연에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독일의 화학자인 허터 와 드리필드는 공동으로 연구한 화합물의 특성 곡선 이론을 내놓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 있었다. 이 이론은 사진의 은화합물이 빛을 받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속되어도 더 이상 금속 은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오히려 빛을 더 받으면 반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현상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인데 약한 빛에 의해 잠상이 형성된 그림자 부분은 현상 시간을 연장 하여도 ‘금속은’으로 환원 되지 않는다.

즉, 노출 부족된 부분은 아무리 오래 현상을 지속 하더라도 은 입자가 형성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정한 빛을 받은 부분이라야 정상적인 비례 관계에 의해서 톤이 규칙적으로 재생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에머슨이 그토록 회화주의 사진을 비난 하면서 어떠한 조작을 가하지 않고도 사람이 본 그대로 현실을 사진으로 재현 할 수 있다고 또 그렇게 해야만 사진이 독립적으로 회화모방에서 벗어나 사진의 고유한 사실성 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틀린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진은 카메라에 의해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만 조정이 가능하거나 현상, 인화단계에서의 차이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의 개성자체를 보여주기 어렵고 매우 한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폰 헬름홀츠의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에머슨에게는 사실 지나치게 육안이 감지한 이미지, 즉 망막에 어린 이미지만이 유일하며 정당한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의 사진들이 가리키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나의 “인상”으로 포착되어 그 눈 속에서 영상화 된 현실이다. 이렇게 본원적으로 받아들여진 “인상”을 예술사진은 “또 다른 단계”로 올려놓는 것이다. 사진은 이제 더 이상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합치와 등가의 문제였다. 사진 역사상 처음으로 현실재현의 문제가 부차적인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미지 혹은 이미지간의 상호관계만이 새로운 논쟁의 관심사가 되었다.
사진은 회화보다 더욱 강하게 현실이나 대상 그 자체를 반영하는 매체로서 에머슨은 어떤 의미에서 사진적인 현실성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던 회화 표현을 사진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에머슨의 자연주의 사진은 최초로 사진에 모더니즘의 문제를 열어놓은 것이다.

글 : 이영욱 (중국 연변대학교 사진과 교수 rxli@ybu.ed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