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름다운 시

사의 예찬-박종화(朴鍾和)(<백조>3호 1923.9)

大空 2008. 7. 8. 09:41

보라!
때 아니라, 지금은 그때 아니다.
그러나 보라!
살과 혼
화려한 오색의 빛으로 얽어서 짜 놓은
훈향(薰香)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검은 옷을 해골 위에 걸고
말없이 주토(朱土)빛 흙을 밟는 무리를 보라.
이곳에 생명이 있나니
이곳에 참이 있나니
장엄한 칠흑(漆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
해골! 무언(無言)!
번쩍거리는 진리는 이곳에 있지 아니하냐.
아, 그렇다 영겁(永劫) 위에.

 

젊은 사람의 무리야!
모든 새로운 살림을
이 세상 위에 세우려는 사람의 무리야!
부르짖어라, 그대들의
얇으나 강한 성대가
찢어져 해이(解弛)될 때까지 부르짖어라.

 

격분에 뛰는 빨간 염통이 터져
아름다운 피를 뿜고 넘어질 때까지
힘껏 성내어 보아라
그러나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흐트러진 만화경(萬華鏡) 조각
아지 못할 한때의 꿈자리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고웁게 물들인 종이로 꽃을 만들어
가지마다 걸고
봄이라 노래하고 춤추고 웃으나
바람 부는 그 밤이 다시 오면은
눈물 나는 그 날이 다시 오면은
허무한 그 밤의 시름 또 어찌하랴?
얻을 수 없나니, 참을 얻을 수 없나니
분 먹인 얇다란 종이 하나로.

 

온갖 추예(醜穢)를 가리운 이 시절에
진리의 빛을 볼 수 없나니
아, 돌아가자.
살과 혼
훈향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거룩한 해골의 무리
말없이 걷는
칠흑의 하늘, 주토의 거리로 돌아가자.

 

[ 박종화(朴鍾和) ]


(1901∼1981)
시인.소설가. 호는 월탄(月灘).
서울에서 출생. 소년 시절 사숙에서 12년간 한학 수업을 받았다. 1920년에 휘문 의숙을 졸업한 후, 1921년 시 동인지 <장미촌>창간호에 시 [오뇌의 청춘]과 [우윳빛 거리]두 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1922년 <백조>의 동인이 되고, 동지(同誌)에 시 <밀실로 돌아가라>, 평론 <오호아문단>, 처녀 단편 <목매이는 여자>등을 발표하였다. 1924년에는 처녀 시집 <흑방 비곡>을 발표하여 문단에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 후<아버지의 아들> <순댓국> <시인> <여명>등을 쓰면서 소설가로 변신하였는데, 이들 작품은 모두 생생한 현실을 다룬 데 특색이 있다. 1936년에 장편소설 <금상의 피>를 <매일신보>에 연재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역사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 후 <대춘부> <전야> <다정 불심>등을 발표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 정신을 역사 소설로써 표현하였다. 광복 후 1949년에는 서울 신문 사장, 1955년에는 예술원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70년 통일원 고문, 1980년에 국정 자문 위원이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시 [사의 예찬]등과 소설 <홍경래> <논개> <임진왜란> <여인 천하>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아름다운 이 조국을>등이 있으며, 수필집 <달과 구름과 사상과>가 있다.

학력 휘문고보 졸업(1920)
등단 1920년 『서광』에「쫓긴이의 노래」를 발표, 1921년 『장미촌』에「오뇌의 청춘」과 「우유빛 거리」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 시작
경력 『백조』동인, 전조선문필가협회 부회장, 한국문학가협회 회장,
서울시 예술위원회 위원장, 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성균관대 교수, 서울신문 사장 등 역임
저서 시집 『흑방비곡』(조선도서주식회사, 1924),『청자부』(고려문화사, 1946), 『월탄시선』(현대문학사, 1961),
소설집『금삼의 피』(박문서관, 1938), 『대춘부』(을유문화사, 1939)외 다수.
기타 예술원상(195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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