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불교
유식불교의 인식논리
근원적인 인간 의식의 기본에 의해서 우리들의 생존을 살펴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양상이 있다. 그 세 가지의 양상이 그 근원에 있어서 공(空)이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유식불교의 논리를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변계소집성( 計所執性)이다. 이것은 그릇된 계산,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집착하게 되는 모습이다.
둘째, 의타기성(依他起性)이다. 이것은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겨나는 삶의 형태이다.
셋째,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이것은 둥글고 참다운 이 우주의 근원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중관철학에서 말하는 공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첫째, 변계소집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의 허망한 인식분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집과 편견 대문에 이러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현실세계이다실제로 우리들 주변을 보면 그러한 것들이 적지 않다. 본래는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있다고 고집한다. 그 흔한 사랑타령도 마찬가지이다. 또 권력의 대욕에 불타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즉, 변계소집적인 경우가 많다. 본래는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또 한 생각 돌이키게 되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래서 '나' 라고 하는 것이 영원히 있다고 착각하고, '법' 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고집하게 되는 이 세상의 현실들, 이것은 엄청난 비극과 불행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따라서 불교인들의 의식은 무엇보다도 변계소집성적인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
둘째, 의타기성이라는 것은 이 우주의 본래 모습이다. 이것은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다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 존재한다.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 우주의 모습들이 바로 의타기적인 면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들의 도움을 얻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물, 불, 공기, 빛 이러한 것들은 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러한 것들이 있음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존재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에게 존재를 부여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존재하게 된 사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추어질 대상이 없는 태양은 무의미하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연관적이다. 바로 그것을 이름해서 의타기성이라고 한다.
셋째, 원성실성은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말한다. 법(法)과 아(我),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이 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 근원적인 의식을 원성실성이라고 설명한다.그러면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모습이 모두 동시에 공성(空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변계소집은 본래 없는데 망령된 집착으로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으므로 없는 것이고, 의타기는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원적인 입장에서 이것도 또한 없는 것이다.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다른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죽어서 없어진 후에라도 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이 세상에 그 무엇을 보아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의타기성 자체도 상관관계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유식불교와 직접 관계는 없으나 무아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론 가운데《미란다팡하》가 있다. 그 책은 엄밀한 의미로 보면 경전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희랍의 왕인 메난드로스와 인도 스님인 나가세나 사이의 대담을 엮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미린다 왕의 물음과 그에 대답'이라는 뜻이다.
한역으로 되어 있는 경전 속에는《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왕문경》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거기에서 나가세나 비구가 무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그 당시 인도의 서북부룰 통치한 왕은 메난드로스(혹은 밀린다)로서, 그는 토론의 명수였다고 한다. 그와 대론하여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그래서 그는 매우 교만하게 말하였
다.
"전인도의 스님 가운데 나와 토론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말인가?"
그러자 인도의 많은 스님들이 나가세나스님을 추천하였다. 그 스님은 변재가 능란하고 불도에 심취하여 큰 깨달음을 얻은 이였다. 그래서 그 스님이야말로 인도 불교의 자존심이라고
하면서 내세웠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그런데 만나기 전에 나가세나스님이 조건을 내건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의 자격으로 나를 만날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응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의 자격으로 만나겠다고 한다면, 나는 응하지 않겠노라."
그러자 왕이 물었다.
"왕의 자격과 현자의 자격, 그 양자의 치이는 무엇인가?"
대답하기를, "현자의 자격으로 만난다면, 그대와 나는 진리 앞에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 가르침에 설복 당한다 해도 수긍을 할 것이다. 그러나 왕의 자격으로 만나서 그대
가 내게 진다면, 화를 내고 나를 죽여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왕의 자격으로 만난다면 나는 나갈 수 없다."
그 말을 듣고 메난드로스 왕은 토론에서 자신이 진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웃고 만다. 그리고 나가세나스님의 요구에 응하여 현자의 자격으로 만나기로 하고 만날 약속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만나서 토론을 벌이게 된다.
먼저 왕이 말하였다.
"스님, 먼곳까지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희랍의 왕 메난드로스라고 합니다. 스님은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불러서 나가세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가세나라고 불리울 그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왕에게 물었다.
"왕께서는 저를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예, 저는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그러면 수레를 끄는 말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수레의 바퀴가 수레입니까?"
" 아닙니다."
"햇빛을 가리는 휘장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말을 때리는 채찍, 그것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나가세나의 눈이 나가세나
입니까?"
"아닙니다."
"코가 나가세나입니까? 귀가 나가세나입니까? 몸이 나가
세나입니까? 마음이 나가세나 입니까?……."
이 모든 물음에 왕은 아니라고 답한다.
"지금 왕께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 어떤 것들도 나가세나의 실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거짓 인연 화합한 것을 많은 사람들은 나가세나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
입니다. 그러나 그 인연이 소멸되면 나가세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아에 대한 탁월한 해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미린다팡하》는 약간 부파불교적인 색채가 짙어서 대승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만족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완전히 이론적인 정립이 되기 이전에 편찬된 것이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여하튼 의타기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성(無性)이다. 성품이 있을 수 없다. 잠시 여기 머물러 있을 따름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타기성도 무성이다.
원성실성은 고요한 어떤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외도들에게 늘 공격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승의무성(勝義無性)이라고도 한다. 승의제란 용수보살도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의 사무를 초월하는 가장 밑바탕에 있는 근원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은 성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승의가 무성이다.
따라서 유식삼상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관조했을 때, 우리는 삼무성의 입장에서 서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관하고 닦아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유식불교의 기본적인 교설이 된다.
유식의 기본 경전,《해심밀경》
유식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경전은 《해심밀경》이라고 이미 언급하였다.《해심밀경》의 산스크리트 원명은 삼디니르모차나수트라(samdhi-nirmocana-sutra) 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일찍이 영어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해심밀경》의 여러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교리적인 설명과 실천적인 설명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심밀경》 첫머리는 <서품(序品)>이고 두 번째는 <승의제상품(勝義제相品)>이다.
승의제란 제일의제라는 말과 동의어로 공, 즉 사물의 밑바탕에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진여의 세계를 말한다. 진여의 경지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두 번째 <승의제상품>에서 설명하고 있다. 진여의 세계는 모든 것을 용납하고,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여의 세계가 어떠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세 번째는<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이라고 하였는데, 세속제(世俗제)의 경지를 설명한 부분이다. 두 번째의<승의제상품>이 진여라는 절대 완전한 세계에 대한 해설이라면 이 세번째 품은 세속제의 대상, 특히 제8식과 제7식의 현현으로서 드러나는 이 우주의 모습들에 대한 해석이다.
네 번째,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이 있다. 이《해심밀경소》의 <일체법상품>에는 변계소집, 의타기, 원성실 등에 관해 해설을 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법이 취할 수 있는 갖가지의 모습이 변계소집적인 것으로 없는 것인데 자기의 망상으로 말미암아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모든 것이 다 의타기로서 연따라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사물의 가장 근원에서 공의 이치와 섭리를 드러내는 모습인 원성실의 이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섯째 <무자성품(無自性品).에서는 변계소집, 의타기, 원성실에 대한 삼무성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여섯째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가 유식의 관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뒤에서 보다 상세히 언급해 보기로 한다.
일곱째 <지바라밀다품(智波羅蜜多品)>이라고 하여 십지(十地)와 십바라밀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통상 우리 불자들은 육바라밀에 대하여 더 익숙하게 생각하겠지만 앞에 나온 여섯 가지 실천 조항은 똑같고, 다만 뒤에다가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이 네 가지를 더 넣어서 십바라밀이라 한다.이와 같은 사고방삭은 《화엄경》의 <십지품(十地品)>이 등장
한 이래로 열이라는 숫자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바라밀에 네 가지를 더 첨가시킨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덟째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이다. 이것은 여래의 법신과 화신에 대한 해설이다. 이에 대해서는 《열반경》을 설명하는 장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몸에 대한 이해는 불타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본불교시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32상 80종호 같은 발상이 나온다. 또 대승불교가 등장하면서 일체제불,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게도 부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영원한 부처님의 인격을 법신(法身)이라는 용어로 요약한다. 진리의 몸이라는 해설이기 때문에 불교의 교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이 《해심밀경》의 설명보다《열반경》이나《법화경》,《화엄경》의 설명이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즉, 《해심밀경》은 앞의 서론이나 본론 부분에서는 주로 유식불교의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제8아뢰야식이나 삼상(三相)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서는 유식의 실천적인 수행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