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辛錫正)1907-1974, 석정 夕汀, 본명 錫正
신석정
◈ 辛錫正, 1907-1974, 석정 夕汀, 본명 錫正
◈ 전주에서 교사 생활로 만년을 보냄.
◈24년 [조선일보]에 습작시 <기우는 해> 발표 후 시작 활동
전원적, 목가적, 낭만주의적 시풍으로 기억되는 신석정은 반세속적(反世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해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찍이 김기림이 현대문명의 잡답(雜踏)을 멀리 피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이라 평가하였듯이, 신석정은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 갇힌 시인들의 문학적 대응양상을 잘 보여준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로서 초월적이고 본원적인 실재에 대한 강한 희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희구는 전원적, 자연친화적 이상향에 대한 시적 열망으로 그려진다. 6.25 이후 현실사외에 대한 관심을 보이나 반속(反俗)정신과 자연성 고조 및 동양적인 낭만주의로 일관한다.
◈ 시집: 촛불, 슬픈 목가, 빙하,산의 서곡,대바람소리등
◈ 유적지:
생가-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시비- 석정공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대표시 감상
◈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암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끼어 자욱한밤에
말없이 재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꽃 덤풀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잃어버린 벗도 있다.
蝡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 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1946.광복의 기쁨과 새로운 민족 국가 수립의 염원)
◈ 어머니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출전:<촛불>(1939)
표현상 특징:시행 반복의 형식
호소하는 듯한 어조
물음의 형식을 통한 권유
◈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나의 거룩한 일과이거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커지 맡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첨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서 이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읍 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은 고요한 명상하고 얼굴이 떨고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 밤은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 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읍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커지 말으셔요.
이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많은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어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내 마음 머언 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 식물들이 자라나거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아 오지 않아도 좋
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그러나 마음이여
나는 언제까지 너외 이별이 갖은 이 생활을 하여야겠는가?
◈ 오후의 명상
내 소박한 정원을 장식하는 어린 은행나무여
봄이 또 너에게 무엇을 준다 하여
고 가륵한 손들을 차츰차츰 벌리기 시작하였는뇨?
오후에 내 너를 바라보며 네 옆에 앉아서 명상하는 것은
밤에 너와 소곧대는 별들의 푸른 이야기도 아니요.
다만 너의 변할 줄 모르는 무심한 생활이어니
나의 어린 은행나무여
이윽고 너는 건강한 가을을 맞이하여
황금같이 노오란 네 단조한 잎새들로 하여금
그 푸른 하늘 시를 쓰는 일과를 잊지 않겠지.......
"여보! 당신은 어서 그 좁은 주택을 떠나서
산새처럼 저 푸른 하늘을 날고 싶지 않소?"
네가 쓰는 시에서 이런 그절이 있었나니
나의 �?시인 은행나무여
쪽지 부러진 내 마음의 작은 산새가 또 얼마나 퍼덕이겠니
오는 가을에는........
오는 가을애는........
오는 가을에는........
석정은 그의 소재를 거의 농촌의 자연에서 얻고있다. 그러면서 시의
기법은 소박만을 고집하지 않고 항상 참신한 이미지를 살리고 있다.
나무 등걸에 앉아서
요요한
산이로다.
겹겹이 쌓인 풀길 없는 우리 가슴같이
깊은 산이로다.
아아라한 오월 하늘 짙푸른 속에
종달새
종달새
종달새는 미치게 울고
산은
첩첩
청대숲보다 더 밋밋하고 무성한데
아기자기한 우리 두 가슴엔
오눌사 태양 따라 환히 트인 길이 있어
이 나무 등걸에 널 꺼안은 채
이토록 즐거운 눈물이 자꾸만 쏟아지는 것은
진정 죽고 싶도록 살고 싶은
사랑보다는 뜨겁고 더 존엄한 꽃이
가슴 깊이 피어난 까닭이리라.
◈ 산수도(山水圖)
숲길같은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룸 하가히 하늘을 지난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 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시내물 여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 년만 가라......
산수는 오로지 한 폭의 그림이냐?
◈ 망향의 노래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꽃잎마다
지는 꽃잎마다
곱다랗게 자꾸만
감기는 서러운 서러운 연륜을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소리랑
곤때 가신 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어린 손자랑 사는 곳
버리고 온 "생활"이며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만싶어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