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름다운 시

나의 침실로/이상화 李相和(1902∼1943)

大空 2007. 6. 18. 19:05

나의 침실로


    이상화 李相和(1902∼1943),

    호는 상화(尙火), 무량(無量), 백아(白啞). '백조' 동인 시절에는 탐미적, 감상 적인 낭만주의 작품을 썼으나, 카프에 관계하면서 식민지의 비애를 탐미적 수법으로 노래. 『상화와 고월』(1951)에 16편의 유작이 실려 있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못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燭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앝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메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함께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 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과 관능적인 분위기를 기초로 해서 기다림의 긴박한 심정을 나타내는데, 표면적 의미 구조는 얼핏 보면 매우 단순하다. 서정적 자아가 줄곧 '마돈나'를 부르며 '나의 침 실'로 가자고 호소하는 내용이 주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평자들이 이 시의 주제를 '빼앗긴 조국 의 회복을 위한 염원'으로 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마돈나'를 잃어버린 조국의 상징 으로, '침실'을 주권 회복이 완성된 공간으로 해석하여, 이 시를 마돈나(조국)를 되찾기 위한 시인 의 몸부림이 정열적으로 배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시를 획일적인 안목으로 도식화하는 [일제시대 작품 = 애국시, 저항시] 안이함에서 벗어나 최근 이렇게 형하기도 한다. '마돈나'를 '구원의 여인상'으로, 더 나아가 '조국이 존재함으 로써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사랑 . 희망 . 이상을 두루 상징하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침실' 에 대해서는 다소 해석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을 '시적 자아의 모든 이상이 담긴 도피처'로 보 는 견해와 '죽음의 세계'로 보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전반부(1~6연)에서 침실은 관능적 쾌락의 장소이지만 후반부(7~12)로 가면서 죽음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 때의 죽음은 생의 종말로서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동굴'이다. 현실적 절망 속에서 죽음은 오히려 현실의 온갖 부정적인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봉건적인 가족 제도와 식민지 치하의 역사적 현실을 모두 부정하고, 시적 자아가 궁극 적으로 도달하기를 열망하는 이상향이 '침실'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화의 초기 시는 고뇌와 죽음을 주로 다룬다.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낭만적인 이상을 추구 하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아와 현실의 단절에서 오는 좌절을 퇴폐와 관능의 미로 벗어나고자 하 였다. 이렇듯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 낭만적인 초월이 상화의 초기 시가 갖는 특징이다.